월남인: 하나가 아닌 여럿 혹은 파편화된 기억들
규칙과 예외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예외를 통해 우리는 규칙을 발견한다
- Giorgio Agamben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Ludwig Wittgenstein
서론
월남민은 38선 획정에서부터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에서 살고 있다가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이러한 월남민은 대체로 1990 년대 초에 이르는 과정 동안 반공 이데올로기에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정상 국민이라는 ‘우리’의 범주에 대비되어) ‘그들’에 대한 담론이 구성되었다. 이러한 월남민에 대한 재현은 비록 지배적인 냉전 담론이나 혹은 대항적 담론에서 상이하게 나타났지만 그 일반적인 이미지는 이후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지배적인 월남민의 재현이 숨기고 있는 균열과 이에 대한 비판은 다시 한 번 월남인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 디아스포라로서 월남민?
월남민의 특수한 실존적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방 이후에서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이르는 남한에서 일어난 국민 형성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기존 외국의 논의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이 국가 형성 과정이었는데, 가령 틸리는 유럽에서의 근대 국민 국가 형성의 10,00여 년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근대 국가는 전쟁기계라고 규정하였다(Tilly, 1992). 그에 따르면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은 전쟁의 양상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틸리의 논의는 한국의 상황에 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나 이는 한국에서의 주된 문제는 근대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도리어 만들어진 근대 국가에 맞는 국민을 (국가가) 창출해 내는 것이었다(김동춘, 2011).
이 글에서 국민 형성 과정에 주목을 하는 것은 다음의 이유와 같다. 먼저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민족적 열망과는 다르게 38 선이 그어지고 나서 남한과 북한의 분리가 일어났다. 따라서 외세에 의한 이러한 근대 국민 국가의 형식적 부과가 있어 왔었으며 이러한 기반 아래에서 도리어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국민 형성이었다. 이미 오랜 시기부터 역사적으로 별 다른 분리 없이 지내 왔던 한반도의 인민들은 이러한 분계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극렬한 이념 투쟁과 무장 투쟁을 통해 각각의 국가들은 인민을 그들의 국민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이 글에서 주로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은 남한에서의 국민 만들기의 과정과 이러한 과정에서 월남민이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와 그 문화적 재현, 나아가 문화적 재현과 실재의 간극이다.
먼저 해방 이후에서부터 남한에서의 근대 국가 형성은 자발적이고 내부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의미에서 인민 주권에 기반을 두었다기 보다는 외국의 제도의 (압력에 의한) 수용에 가까웠다. 특히 비록 다양한 제약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당이나 세력이 일방적으로 우세하였거나 열등하지 않았고 또 좌/우가 서로를 일방적으로 배제할 수 없었던 정초적 공간으로써 해방 공간은 이후 전세계적 냉전의 개막과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 관철해 내야 했던 국내의 이승만 계열의 우익과 미군정의 주된 역할에 의해서 만들어진 보수적 자유주의에 기반을 하였다(박찬표, 2007). 이렇게 남한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과정 동안 민주주의가 냉전 자유주의에 기반을 하여 이식이 되었으나 사실상 이러한 국가에 맞는 국민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전쟁의 경험 이후였다.
슈미트(Schmitt, 2007)가 지적하였듯이 정치적인 것은 언제나 아군/적의 구분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로써 대한민국은 이러한 아군/적의 구분을 명료하게 인민들에게 제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이미 해방 공간의 특수한 상황은 이러한 아군/적의 구분, 적의 비인간화를 할 수 없는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좌/우 이전에 함께 살아온 우리로서 인식되었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남한 정부가 수립되고 냉전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부가 본격적으로 좌익을 탄압하고 좌익 또한 유격대 활동으로 전환을 하여 남한 정부의 정당성에 대해서 무력 시위를 통해 도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의 한반도 내에 사는 인민에서 남한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가 최초로 그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은 물리적인 과정과 상징적인 과정 양 차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데 특히 빨치산 활동은 물리적으로 인민이 국민과 비국민으로서 분리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한편 상징적으로 남한 정부 및 우익 세력이 이들을 반민족주의적인 세력으로 없어져야 될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들에게서 국민으로서의 자리를 박탈하였다. 이는 이후 한국전쟁에 들어서면서 가속화되었다. 한국전쟁은 단지 이념과 국민/비국민의 문제가 중앙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인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각인시켰고 특히 각지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은 이러한 인민의 국민으로의 전환을 가져다 준 일종의 의례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대한민국의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대립의 구도를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정당성 자체에 대해 반발을 한, 인민에서 비국민화의 과정을 거친 빨치산의 존재만이 아니었다. 도리어 이와는 정 반대의 입장이긴 하였지만 월남민은 이 시기 국민화 과정에서 인민의 국민화와는 대비되어 비국민(혹은 적대국의 국민)의 국민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주변화된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지배적인 명백한 이항대립의 전선을 흩트리는 언제나 의심스럽고 감시를 받아야 하는 대상들로 인식되었다(공임순, 2009).
기본적으로 디아스포라는 소수집단의 경험이다. 소수집단이 보다 큰 사회의 하위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편견, 차별, 불평등, 박해 등이 디아스포라의 기본 요소들이고, 그러한 불리한 조건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디아스포라 공동체, 디아스포라 정체성, 디아스포라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의 다수지배집단으로 행사할 때 인식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관해서는 소수자는 그의 산 경험을 통해 냉철하게 인식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디아스포라 연구는 단지 소수집단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자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
1) 윤인진(2000). (서평)『월남인의 생활경험과 정체성: 밑으로부터의 월남인 연구』: 김귀옥 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558쪽, 정가 18,000원. 『한국사회학』, 제 34집 가을. pp. 783.
하지만 이러한 디아스포라에 대한 규정이 월남민에 정확히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월남민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집단으로써 단순히 차별을 받기만 하였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들은 차별을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지배적인 사회 논리를 수용하고 이를 다른 인민들에게 집행함으로써 남한에서의 국민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기여를 한 세력이기도 하였다. 월남인들은 서북 청년단 등 다양한 월남인들이 결성한 단체들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 세력의 논리에 대한 과잉 동일화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북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나 의심을 받고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지배 논리에 자신을 동일화시킴으로써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국민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실제 월남인을 소수집단으로,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도리어 현실 논리에 대한 적극적인 집행자의 역할을 자처하였던 이들은 자신들의 주변화된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배 질서에 과잉 동일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 보론: 월남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거리감과 이를 가능케 하였던 고향 이미지
1950 년대의 월남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비록 그 월남의 시기에 따라 그 성향이 달라지긴 하지만 월남인으로서 나타나는 현존 지배 질서에의 과잉 동일화의 양상을 대체로 드러내고 있다.2) 다시 말해 월남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비록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간에 지속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개인적인 월남의 동기들과 함께 1950 년의 관제 반공 이데올로기의 억압적 요소들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월남민에 대한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차별은 이들에게 있어서 지속적으로 ‘정상’ 남한 국민과 그들이 갈라지는 지점들을 만들어 내었고 이들 월남 작가들 중에는 이러한 점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경우가 있었다.
2) 물론 이러한 경향은 한수영(1993)이 언급한 바와 같이 각 월남 작가들 개개인의 월남 동기와 사회경제적인 조건들을 면밀하게 따져보고 살펴봄으로써, 다시 말해 개별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남으로써 파악 가능한 문제라는 점에서 손쉬운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
유대인 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동화 정책을 지지하였던 프랑스에서 살았던 뒤르켕에 비해 지속적으로 차별적인 상황 아래에서 살았던 프로이트의 경우 그 실현되지 않는 (유태인에 대한 기존 사회에의) 동화의 약속에 의한 좌절과 그 불만이 이후 그의 이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듯이(김종엽, 1999) 월남 작가 박순녀는 월남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하여 기존의 남한 사회에 정상 국민으로서 완벽하게 동화가 될 수 없는 간극을 지속적으로 그의 작가 정신을 통해서 드러낸다(이명희, 2008).
그녀는 남한에서 살고 있었던 국민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이후 그녀는 그녀의 구술에서 보듯이 월남인으로서 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월남인의 주변화되고 불리한 위치에 대해서 명백히 인식하고 있어 보인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또한 그녀의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실향의 이미지는 완벽한 동화의 불가능성을 제시하며 동시에 남한 사회와의 거리감을 유지시켜주면서 도리어 실제 사회 속에서 월남인의 과잉 동일화의 반대편에서 지속적으로 이 사회에 대한 메타적-반성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이후 월남 작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박순녀에게서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본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과잉 동일화에 기반을 한 반공주의 논리만이 월남인의 주된 태도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도리어 이들의 뿌리 뽑힌 실향민의 경험은 완벽한 동일화에 대한 약속을 지속적으로 스스로 거부하며 남한 사회와의 거리감을 느낌으로써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규범적인 고향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이명희, 2008).
2. 분열된 월남인의 기억: 하나의 월남민인가?
앞서의 논의에서 월남민이 한국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문화적 재현의 양상과 이에 따라 이들의 조건이 어떻게 제약될 수밖에 없었는가,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왜 이들이 과잉 동일화의 지점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과정은 단순히 월남인이 하나의 소수집단으로써 디아스포라로 인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으며 또한 월남 작가들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 이들의 위치가 한편으로는 과잉 동일화의 양상을 취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실향민으로서의 월남인의 자기규정과 이를 통해 도출해낸 고향의 이미지를 통해서 기존 사회와의 거리감을 유지하였다는 점 또한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월남민에 대한 사회문화적 재현이 실제 월남민의 양상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알렉산더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달라진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맥락이었다”(Alexander, 2007)는 점을 지적하였듯이 언제나 실재는 그 고유한 (사회적) 상징화의 과정을 통해서만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 상징화의 과정은 문화의 영역에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갖고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는 실재의 논리와는 또 다른 양상을 갖는다. 특히 1990 년도 들어서 이루어지는 경험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월남민의 양상은 기존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이를 기반으로 한 담론들에 의해 채색되어 온 월남민의 재현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귀옥(1999a; 1999b; 2004)3)는 실제로 월남민 정착촌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재현된 월남민의 균일하고 일정한 재현과 실제 월남민의 간극을 명백하게 드러내었는데 그녀는 월남민의 공식적 담론에서 숨겨져 있던 이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월남인의 반공신화가 숨겨왔었던 월남인에 대한 실제 모습과 재현 간의 부정합과 모순, 분열을 드러내고 있다.
3) 김귀옥과 같은 실제 월남민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의 케이스는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면서 살펴보았지만 극히 드물었다. 따라서 이 파트에서는 주로 김귀옥의 연구 성과를 주로 소개하면서 이와 동시에 기존의 월남민에 대한 사회문화적 재현이 가리고 있는 간극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녀가 비판하고 있는 통념으로서 월남인은 다섯 가지로 ① 월남인의 대다수가 중상층, 엘리트라는 주장, ② 한국 전쟁 이전의 월남인이 한국 전쟁 발발 이후의 월남인 보다 많다는 주장, ③ 월남 동기가 정치적인 이유라는 주장, ④ 월남 (남성) 청장년들은 반공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하면서 조국 수호에 앞장섰다는 주장, ⑤ 월남인들이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다고 하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김귀옥, 1999a: 238-242). 그리고 이러한 월남인에 대한 이미지는 앞에서 살펴본 월남인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재현 혹은 사회적인 이해와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경험적인 연구는 이러한 월남인에 대한 재현이 상당부분 특수한 월남인들에 대한 재현이고 따라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녀는 과잉 대표된 엘리트 월남인과 그녀가 경험적으로 연구하였던 정착촌 월남인을 대립시킨다. 이 대립 양상은 하나의 월남인에 대한 재현을 기각시키고 기존의 다섯 가지의 통념이 사실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녀는 월남인의 월남 동기에 있어서 단순히 정치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정치적 동기들, 즉 경제적인 요소와 다양한 강압적인 요소들도 상당 부분 크게 작용하고 있었으며 월남인의 사회경제적 배경 또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넓게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월남 작가들의 문학적 형상화와는 다르게 정착촌의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는 월남인들의 경우 자신들을 실향민으로 여기기 보다는 정착인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김귀옥, 1999b).
하지만 이러한 간극은 단지 실제적인 간극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김귀옥이 연구를 한 1999년은 실제 월남민들이 발생하였던 1945-1953년의 기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인 차이가 있었으며 또한 이후의 역사적 과정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역할과 월남인 스스로의 자기정체성의 구성의 과정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시간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여기에서 나타나는 월남인의 기억은 김귀옥이 제기하는 것과 같이 대립적인 두 개의 양상으로 살펴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녀는 지배적인 월남인에 대한 반공주의적 표상의 균열을 보여주었지만 그 균열을 넘어서는 실재가 단순히 엘리트 월남인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정착촌 월남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인 연구의 양적 한계와 시간적인 한계라는 두 가지 제약이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한계 내에서 그러한 서사가 가능하느냐는 비판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4) 어찌되었든 기존의 재현된 월남인 만큼이나 정착촌 월남인은 전체 월남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기존의 재현에 대한 균열을 가리키고 있을 때 이 논의가 적절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4)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귀옥(1999b)이 시도한 바와 같이 정착촌 월남민의 경험을 기존의 월남인의 표상인 엘리트 월남인과 비교함으로써 적절한 차이점들을 구분해 낼 수 있다.
3. 서발턴으로서의 월남민
앞서의 논의에서 월남민이 비록 사회문화적인 조건 속에서 주변화된 존재로서 위치 지어졌지만 이들이 단지 소수집단으로 사회 속에서 차별을 받는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사회 속의 하나의 하위집단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과 사회와의 관계는 일방향적이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사회 속에서 그들의 모순적인 위치를 지각하면서 과잉 동일화와 사회적 거리감 양 극단 속에서 있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월남인의 양상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실제 월남인의 경험과 재현된 월남인의 간극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특히 김귀옥(1999a; 1999b; 2004)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 하나의 월남인에 대한 재현의 통념과 균열을 드러내고 이를 비판한다. 그는 정착촌 월남인의 삶을 경험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재현된 월남인과 혹은 소수의 엘리트 월남인과 정착촌 월남인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왔음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전자가 지나치게 과잉 대표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일반적인(양적, 시간적) 한계라는 제약 때문에 두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착촌 월남인은 기존의 재현된 월남인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확한’ 재현물로 여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이해하며 일반적인 월남인 일반을 재현한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월남인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가 제기된다. 사실상 월남인이 단순한 피해자라거나 혹은 주변부에 위치되어 있는 디아스포라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재현된 월남인이 실제의 월남인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 월남인의 과잉된 재현이라고 한다면, 또한 여러 제약들이 이러한 재현에 대한 또 다른 대항적 재현 혹은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다면 이러한 월남인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이러한 역사의 파편화된 기억에 대한 일련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에게도 역사란 (월남인의 재현에서 마찬가지듯이) 승리한 지배한 자들의 역사이며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서사이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선적인 시간, 공허하고 균질한 (근대적)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미래라는 시간 속에 내던짐으로써 과거의 (억압적인) 기억과 전통을 말살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의 잔해들을 끊임없이 내팽겨치는 파국적 진보인 보편적 역사에 대립시켜 그는 이러한 과거의 잔해들을 현재와의 충돌을 통해 드러내는 성좌구조에 기반을 한 정지의 변증법, “지금시간(Jetztzeit)으로 충만한 시간”(Benjamin, 2008a)을 불러 일으키고자 한다. 이는 다시 말해 기존의 지배자들의 역사가 잔해더미 속에 파 묻은 역사의 기억들을 다시 되살리는/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푹스에 대한 벤야민의 또 다른 글,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를 이해할 수 있다(Benjamin, 2008b). 푹스는 문화사의 토대 아래에서 기존의 예술사가 주목하지 않는 대중 예술에 주목을 하였고 독창적인 수집가로서 그것들 중 존재하고 있는 고유성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푹스의 “이름 없는 자들과 그 이름 없는 자들의 솜씨의 흔적을 보조해준 것을 향한 그러한 관찰”(폭스, 325)은 벤야민이 이후에 언급하는 역사적 유물론자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야민도 아래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월남민에 대한 완벽한 재현 혹은 복원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완벽한 복원은 세속적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메시아 자신이 비로소 모든 역사적 사건을 완성시킨다 (…) 역사적인 것도 그 자체로부터 메시아적인 것과 연관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왕국은 역사적 동력의 목표가 아니다. 신의 왕국은 목표로 설정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의 왕국은 목표가 아니라 종말이다5).
5) Benjamin, Walter. “신학적•정치적 단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역. 길. pp. 129-130.
이러한 주장은 마치 서발턴6)에 대한 스피박의 주장을 연상시킨다. 사회 속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으며 지배적인 역사와 대항적인 서사 모두에게서 배제된 존재들인 서발턴은 스피박에 따르면 기존의 지배적 담론에 대한 균열을 지적할 수 있으나 이들은 스스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스피박, 2003).
6) 서발턴은 김원(2009)에 따르면 “주체로서 위상을 부여 받지 못하고 주체화 과정에서 배제되는 타자를 지칭한다.”
김원(2011: 1)에 따르면 한국의 냉전 시기 서발턴은 “한국에서 이들은 한편으로 냉전 근대화 과정에서 비가시화된 동시에, 냉전 지식생산 과정을 포함해서, 그 반대편 편에 존재했던 대항적 민족-민중서사에 의해서도 보편-통합되기를 강요 받은 ‘이중적 타자’이다.” 이러한 서발턴에 대한 정의는 월남민들의 기억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냉전 서사에서 의심스럽고 동화의 표지가 필요한 존재로 재현되거나 대항 서사에서 피해자로 재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체로 이들의 삶은 이러한 재현보다 복잡하거나 이를 벗어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를 비추어 보았을 때 비록 소극적일 수 있을 지라도 서발턴으로서 월남인의 파편화된 역사적 기억들을 지속적으로 (그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하는 것만이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작업일 수 있다(김원, 2009; 2011). 역사적 작업에 대한 이러한 해체적 작업을 통해서 지배적 역사와 기억에 대한 균열과 모순점을 드러내는 일은 비록 대항적인 역사를 만들어 내는 일어 비하면 부정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월남인에 대한 일반적인 재현을 조금 더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만들겠다는 그 욕망 혹은 프로젝트 자체에 내제하고 있는 한계, 다시 말해 경험의 일반화의 불가능성 자체에 대해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는 것, 또는 이들에게 또 다른 언어를 통해서 폭력을 가하지 않기에 대해 재현 불가능한 목소리에 대해 기존의 지식 생산을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예리하게 인식해야 하는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결론
월남민은 대한민국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민 만들기의 프로젝트에서 주변화된 존재로 언제나 그들은 잠재적인 적, 혹은 불확실한 우리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월남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은 월남인들에게 한편으로는 과잉 동일화의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고 또한 월남 작가들, 특히 박순녀의 작품 세계 속에서 나타나듯이 고향에 대한 이미지를 통한 사회적 거리 유지와 동화의 불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반공 이데올로기 안에서의 월남민에 대한 보수적/진보적 재현과 실제 경험적 연구에서 월남민의 삶은 상당 부분 괴리가 있음이 드러났다. 김귀옥의 연구들을 참고하여 살펴본 정착촌에서의 월남민의 삶은 재현된 엘리트 월남인의 통념과는 상당 부분 달랐으며 따라서 재현된 월남인은 소수의 과잉 대표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하더라도 김귀옥이 제시한 정착촌 월남인은 그 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로 인하여 기존의 지배적인 재현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항적 재현 혹은 더욱 올바르다거나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재현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을 인정하면서 억압된 역사의 파편들의 성격과 그것들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의 한계점에 대한 벤야민의 지적과 주변화된 존재들의 목소리가 지배적인 담론 속에서 재현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러한 재현에 대한 휴머니즘적 추구 대신 그 지배적인 담론의 파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그쳐야 한다는 스피박의 조언은 월남인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일반적인 재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를 억압 받은 사람들의 역사(Benjamin, 2008a) 혹은 서발턴(Spivak, 2003)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갖는다. 비록 이러한 해체적 관점이 기존의 담론에 대한 균열을 넘어서 새로운 대항적인 역사를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할 지라도 이러한 작업이 제시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이를 통해 하나의 윤리적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 참고문헌
공임순(2009). “빨치산과 월남인 사이, '이승만'의 재현/대표성의 결여와 초과의 기표들”. 『상허학보』, 27집. 상허학회. pp. 367-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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