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쳐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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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1997) 인용 인용

 "타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당한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나는 알베르 카뮈를 오래전에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많은 신세를 졌다고 늘 되풀이 말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 대한 정보와 추천 요구 때문에 이 점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흔히는 자신도 모르게 청년에게 끼치게 되는 영향처럼 포착할 수 없는 유동적인 것들에 관해 말할 때, 가능한 한 실상을 정확하게 밝히려고 애썼다. 그는 나보다 열다섯 살 아래였다. 내가 그를 만나게 된 시기(그의 나이 열일곱 살)에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한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표하곤 한 그 경의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애정 어린 감사의 표시에서, 본인의 뜻에 반하여, 바위에 영원히 새겨진 비명과 비슷한 일종의 기념물로 변해 갔다. 통행자들은 그의 이름에 내 이름을 연결하는 이 비명을 –너무나 분명해서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그와 나 사이의 온갖 불일치와 빈틈에도 불구하고 그르니에가 카뮈의 <고등학교 선생>이었지 하면서- 읽을 도리밖에 없었다. 역사는 필히 이처럼 씌어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아무리 진실한 것이라 해도, 책들에서 피상적인 것, 하찮은 것, 그리고 일상적이라고 치부되는 본질적인 것을 한쪽으로 제쳐놓기 십상이다. 본질적인 것이란 사실 사람들이 말한 모든 것, 특히 매순간 눈으로 보면서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다." (33-34)

 "그는 늘 인간의 <사법>에 의해 형벌이 가해지는 것에 반대하는 기본적인 반발심을 품고 있었다. 해방 후 어느 날 그는 수없이 벌어지던 이른바 숙청 재판 중 하나를 방청하러 갔다. 그가 보기에 피고는 유죄로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방청석을 떠났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도 연대 책임이 잇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그 사람과 함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이런 종류의 재판에 다시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사형 집행자도 희생자도 없기를! 하고 그는 <<전투>>에서 역설했다. 어떤 죄인에게도 결백한 부분이 잇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진실에 이르려면 대립적인 두 용어를 함께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인간은 결백하지 않지만, 유죄도 아니다. 얼마만큼, 어떤 한계 안에서? 글쎄. 우선은-왜냐하면 ㅡ왜냐하면 그것은 임시 윤리이므로- 저자의 대변인인 리외의 생각처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치유해야 한다. 무지의 고백, 그러나 동시에 결과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필요한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행위의 결의이다." (67-68)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비참한 모습에 고통스러워 했다. 그는 인간이 그토록 많은 불행을 충분히 당하고 있으므로 주제넘게 불행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서 인간에게 고통을 추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의 불행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불행을 역설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용도 없고 유해한 짓이었다."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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